작품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조금씩 달라져요.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어디서 누구와 작품을 보았는지에 따라 작품 감상은 다 다를 테니까요. 더군다나 예술 현장은 저의 일터이기 때문에 이제는 온전한 관객으로서 전시장에 머물 수 없는 순간들도 많아요.
그런데 종종 작품에 압도되어 완전한 관객이 되는 순간을 경험해요. 최기창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그랬어요. 제가 방문한 전시는 작년에 열린 <한 번의 키스>라는 전시였는데요. 전시장에 들어서니 익숙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조각상의 그림이 먼저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구조가 독특한 전시장 덕분에 <피에타>작품이 전시된 층의 위 층의 작품도 한눈에 볼 수 있었죠. 그리고 그곳에는 아래 사진처럼 한글이 적혀있었어요.
처음에는 강렬한 피에타 형상에 멈-칫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어느덧 저는 한글에 둘러싸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하나씩 글귀를 읽어나갔죠
고까짓것...
창밖의빗물같아요...
어느누가쉽다고했나...
해당 전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작품을 일렬로 가지런히 보여주는 여느 갤러리와 달리, 악보에 붙어 있는 음표처럼 벽 이곳저곳에 작품을 걸어놓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주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시각적인 자극은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잖아요. 데미안 허스트가 상어를 통째로 수족관에 넣어 전시하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것처럼요.
그렇다면 미술이 점점 충격적이고 강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어요. 모든 학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되기 마련이잖아요. 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대미술은 예술가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된 형태이고요.
그래서 저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가 무엇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지에 주목해요. 한 마디로 재료를 살펴본다는 거죠. 최기창 작가의 전시장에서도 작품의 재료가 철판, 그것도 부식된 철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정말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예술이 발전하고 있지 않나요?
영원을 약속하는 노랫말 가사들
국가에 대한 맹세, 신을 향한 약속, 사랑 이야기.
다시 그 가사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피에타를 만나러 1층으로 내려갔어요. 이번에는 피에타가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그리고 어렴풋하게 작가가 말하는 사랑의 범주가 아주 넓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반짝이던 금속이 거칠게 변해버린 것은 사랑의 결과였을까요.
이렇게 강한 경험을 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다음 전시를 기다리게 돼요. 이번에는 뭘 보여줄까? 싶은 마음인 거죠. 웹툰에 비유하자면 저는 다음 화를 위해 쿠키를 굽는 팬인 거에요.
그리고 기다림의 결과 같은 장소에서 1년 반 뒤, 다음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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